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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과학기술과 사회 윤리

by 해피라움 2020. 7. 6.

세계 최초로 대중적으로 보급된  PC는 애플의 Apple II 라고 말하지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IBM과 같은 정부와 결탁한 대기업 컴퓨터 능력을 독점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개인의 힘을 해방하기 위한 무기로 개인용 컴퓨터를 제품화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애플은 IBM을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 독재자 빅브라더에 비유한 CM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매커니즘에 적응하기가 쉽지않은 상황인데요. 소형화, 분산, 모듈화를 특징으로하는 기술이 꽃 피운 것 자체는 물론 나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도 그 일종처럼 큰 편의를 제공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유의 위험이 수반되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폭주한 경우에 제어의 어려움입니다. 예를들어 인터넷은 매우 개방적이고 분산 적으로 이용되는 네트워크에 의해서 전반적으로 망가지기 어렵고, 게다가 널리 이용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통되는 정보의 통제는 매우 어렵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비롯한 악성 공격이 언젠가 재앙을 가져온다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과학 기술과 사회윤리라는 책에서 물리학의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원자력 발전과 같은 거대한 시스템형 기술은 불편이 있다면 국가 권력과 그것을 움직이는 시민 운동에 의해 막을 수 있겠는데요. 반면 유전자 변형과 같은 기술은 폭주한 뒤에 제어하는 수단이 없습니다.



DIY바이오 등으로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키트를 구입하면 유전자 변형을 실시한 세포를 생성할 수 있겠는데요. 만일 인간에게 유해한 생물을 새롭게 발명해 버린다는 위험이 있더라도 관리는 커녕 파악의 노력도 없겠습니다.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형화, 분산, 모듈화를 지향하는 가운데 큰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관리 하는 기질과 능력을 잃어버려도 좋은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술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영역에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70년대 무렵을 경계로 개인주의적 세계관으로 급속하게 변화하여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합의 형성을 하고 같은 목표의 실현을 위해 협력하는 집단으로서의 능력과 습관은 문명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원칙으로 하나가 되어왔습니다. 그것이 지난 50여년간 심각하게 소홀하지 않았기에 노동운동의 종류도 저조하게 자본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과대한 자유를 준것이 아닐까요.


한층 더 말하면 큰 시스템을 만들어내기위한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 형성을 게을리하는 동안 의도하지 않은 형태로 사람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시스템과 독재 권력을 위한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차드 바 브룩들이 캘리모니아 션 이데올로기 라는 논문으로 그린 것은 기성의 시스템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 미국 서해안의 엔지니어들이 어느새 신자유주의적 머니 시스템에 삼켜 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였습니다. 이전의 메일 매거진에서 소개한 배제형 사회라는 것도 시스템에서의 도피가 시스템의 지배를 초래하게된다는 전말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0년 전후에 선진국의 사람들이 거대기술에 대한 경계와 관료주의적이고 빡빡한 사회에 권태를 호소 한 것은 대체로 올바른 감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사회를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어 바꾸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전체라는 것으로부터의 도피를 어떻게하고 가능하게 하는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의미있는 것을 만들지 않느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분산을 지향하는 이념은 지금도 살아있고, 예를들어 DIY 바이오를 썼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반권력 반관료주의를 제기한 것이 엔지니어입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인의 손에라는 것인데요.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도 반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엔지니어가 정부나 대기업의 관리를 받지 않고 순수한 개인 간 거래를 실현할 것을 목적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전후의 기술사와 사회사를 동시에 바라봄에 주의하는 것은 1970년경에 과도한 근대성에 따라 생활 공간이 채워버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인류가 그로부터 50년이 지나도 근대성을 능숙하게 마주보는 방법을 익힐 수 있지 낳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해결책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기술과 제도처럼 알기 쉬운 것이 아니라 각국의 국민이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수심년에 걸쳐 간신히 착용할 수 있는 일종의 문화와 생활 양식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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